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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전통 갤러리 지역인 메디슨 에비뉴 75번가에 가면 피라미드를 엎어놓은 듯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계단을 거꾸로 세워놓은 듯 층이 올라갈수록 넓어지는 외관이 특징인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이다.

현대적이고 시대적인 콘셉트를 지닌 미국 예술가들의 등용문인 동시에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예술 작품을 볼 수 있는 최고의 장소이다.

또한 이곳은 예술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표현하는 ‘팝 아트(Pop Art)’나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역동성을 추구하는 추상 표현주의 같은 문화적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던 곳이다.

거트루드 밴더빌트 휘트니에 의해 1931년 설립되었다.

1966년 마르셀 브로이어에 의해 맨해튼의 매디슨가로 이전하였으며, 2015년 하이라인파크가 위치한 허드슨 강변의 갱스부르트가로 다시 이전하였다.

1966년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마르셀 브로이어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설계했다.

휘트니 미술관은 기능적이고 단순함이 돋보이는 바우하우스 스타일의 전형을 보여 준다.

휘트니 미술관은 1930년 미국 전역에 철도를 건설한 ‘철도 왕’ 밴더빌트 가문의 손녀인 거트루드 밴더빌트 휘트니 여사가 수집한 700여 점의 컬렉션으로 시작됐다.

조각가이기도 했던 휘트니 여사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유능한 작가들을 돕기 위해 그들의 작품을 사들인 것이 컬렉션의 시초가 되었다.

휘트니 여사는 1900년대 초반 유럽을 여행하면서 프랑스 몽마르트 언덕과 화가들이 밀집해 있던 몽파르나스의 예술 분위기에 매료됐다.

이때의 강렬한 인상이 휘트니 여사의 창의성을 자극했으며 조각가의 길을 걷게 했다.

재벌가의 상속녀인 휘트니 여사는 자신의 재력을 바탕으로 가난한 예술가들을 후원하였다.

1914년 휘트니 가문의 며느리가 된 이후에는 남편과 함께 맨해튼의 그린위치 빌리지에 있는 건물을 구입해 젊은 작가들이 작품을 전시할 수 있도록 ‘휘트니 스튜디오 클럽’을 설립했다.

이 스튜디오가 오늘날 휘트니 미술관으로 성장한 모태이다.

 

휘트니 여사가 처음부터 미술관 건립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젊은 작가들의 후원자로서 많은 작품을 소장하고 있었던 휘트니 여사는 이들 작품을 기증하겠다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밝혔다.

하지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휘트니 여사의 작품 기증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내심 자신의 기부를 반길 것으로 생각했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검증되지도 않은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받을 수 없다’는 듯 거부 의사를 전해왔다.

공식적인 이유는 수장고가 협소해 제안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실은 ‘안목도 없는 당신이 고른 무명작가들의 작품들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내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휘트니 여사는 직접 미술관을 세우기로 결심했다.

이후 남편의 동의를 얻어 막대한 경비를 들여 휘트니 미술관을 건립했다.

1931년 뉴욕 웨스트 8번가의 기존 건물에서 처음 문을 연 휘트니 미술관은 오늘날에도 미국 국적을 가진 작가들의 작품만 전시한다.

미국 현존 작가의 작품 수집을 원칙으로 삼은 휘트니 여사의 뜻을 받들기 위해서다.

뉴욕 현대미술관이 세계의 현대미술을 대표한다면, 휘트니 미술관은 미국의 현대미술을 아우른다.

‘가장 미국적인 미술관’을 보기 위해 매년 전 세계에서 50만여 명이 방문한다.

실제로 휘트니 미술관이 소장한 작품 가운데는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에드워드 호퍼, 알렉산더 칼더, 조지아 오키프, 재스퍼 존스 등의 작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700여 점에서 출발한 휘트니 컬렉션은 세계적 화장품 메이커인 에스티 로더 등의 기증에 힘입어 회화, 조각, 영상 설치, 소묘, 판화, 사진 등 1 2천여 점으로 늘었다.

840평 규모의 휘트니 미술관에 들어서면 아트숍과 레스토랑 등이 입주해 있는 지하층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지하층 앞뜰에는 조각작품 등을 전시할 수 있는 야외 전시장 겸 카페가 자리하고 있다.

1층 로비 왼쪽에 티켓 판매 창구가 있고, 정면에 있는 서점에서는 현재 열리고 있는 전시회 카탈로그와 미술 서적 등을 판매한다.

1층부터 5층까지가 전시 공간이다.

보통 3, 4층에서는 기획전을 열고 5층에서는 영구 소장품을 전시한다.

4층 전시장은 가장 넓은 공간. 천장이 5미터 이상인 이곳에서는 설치작품을 전시할 수 있고, 공간이나 벽면을 이용한 작품도 만들 수 있어 비엔날레 같은 대형 전시에 알맞다.

휘트니 미술관이 가장 미국적인 미술관으로 불리는 데는 에드워드 호퍼를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작가인 호퍼는 20세기 도시인들의 고독을 정직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1920년대 에드워드 호퍼와 레지널드 마쉬는 휘트니 스튜디오 클럽에서 처음 전시회를 열었다.

호퍼의 부인인 조세피니 나비슨 호퍼 여사가 무명의 에드워드 호퍼를 알아봐준 미술관에 감사의 표시로 〈이른 일요일 아침〉과 〈2층의 햇살〉 등 호퍼의 작품 약 2,500여 점을 기증, 휘트니 미술관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이는 단일 기증으로는 휘트니 미술관 사상 가장 많은 규모이다.

이로 인해 휘트니 미술관은 미국에서 호퍼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미술관이라는 명성을 누리고 있다.

휘트니 미술관을 대표하는 또 다른 작가는 레지널드 마쉬이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뒤 두 살 때 부모와 함께 미국 뉴저지로 이주해온 마쉬는 사회적 · 인종적 불평등으로 고통받는 서민들의 삶을 그린 사회적 사실주의(social realism)의 대표 작가이다.

〈왜 L자를 사용하지 않는가〉와 〈20센트 영화〉 등 200여 점의 마쉬 컬렉션은 휘트니 미술관의 하이라이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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