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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엄 마일(Museum Mile)’로 불리는 맨해튼 5번가를 걷다 보면 유독 눈에 띄는 미술관이 있다.

하얀색 나선형의 건물 모양으로 달팽이를 연상케 하는 구겐하임 미술관(The Solomon R. Guggenheim Museum)이다.

미국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설계로 1957년 문을 연 구겐하임 미술관은 건물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 받는 곳이다.

나선형 구조로 설계된 이 미술관을 보기 위해 매년 전 세계에서 약 90만 명의 관람객이 찾을 정도이다.

건물 자체가 하나의 작품인 구겐하임은 랜드마크로서 문화 시설의 가치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독일 출신의 솔로몬 구겐하임은 화가이자 초대 미술관장 등을 맡았던 힐라 르베이의 권유로 바실리 칸딘스키, 파울 클레 등 비구상 작가들의 작품 수집에 열중했다.

몇 년이 지나자 그의 컬렉션은 미술관이 협소해질 만큼 방대해졌다.

솔로몬은 1943년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게 “비구상 회화들을 위한 ‘영혼의 사원(Temple of Spirit)’을 지어 달라”고 의뢰했다.

당시 미술관의 자문을 맡았던 르베이 여사는 솔로몬의 뜻을 받들어 라이트에게 “우리는 투사, 공간을 사랑하는 사람, 선동자, 실험가 그리고 현자를 원한다”라는 사뭇 파격적인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평생 자연과 건물이 하나 되는 ‘유기 건축’의 철학을 내세웠던 라이트는 당시 62세라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이 도발적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의 마음엔 필생의 역작을 만들고 싶었던 개인적인 욕심도 있었던 듯하다.

무엇보다 라이트의 마음을 움직인 건 ‘공간을 사랑하는 사람(A lover of space)’이라는 문구였다.

라이트는 당시 맨해튼의 무계획적인 도시 개발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건축적인 미학이라고는 전혀 찾아보기 힘든 맨해튼의 건축 문화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16년 뒤인 1959 10, 뉴욕 5번가에 마침내 거대한 흰색 콘크리트 빌딩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은 건물 자체로도 엄청난 흡입력을 자랑하는 곳이지만, 주변의 건물들에 비해 너무 튀고 미술관 외관이 내부의 미술품들을 제압한다는 이유로 개관과 동시에 일부 예술가들과 시민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

특히 뉴욕 시는 나선형의 미술관이 맨해튼의 사각형 건물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예술가들의 불만도 하늘을 찔렀다.

관람객들이 건물 외관에 매료되어 자칫 작품이 뒷전으로 밀려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윌렘 드 쿠닝은 자신의 그림을 곡선 벽에 전시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반해 일반 관람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관람객들은 “미술관이 소장한 작품 중 가장 빛나는 현대미술 걸작”이라며 구겐하임 미술관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건물 내부는 가운데가 뚫려 있고 벽면이 소라 껍질처럼 층층이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는 구조로, 천장의 유리창을 통해 자연광이 바닥까지 쏟아져 벽에 창문이 없는데도 어두운 느낌이 나지 않는다.

내부의 전시공간은 스테인리스 스틸로 떠받친 유리로 된 둥근 지붕을 통해 빛이 들어오는 중앙의 공간을 6층으로 된 나선형 경사로가 에워싸고 있다.

많은 그림들은 경사진 외벽에 숨겨진 금속대에 고정되어 있어, 마치 작품이 공중에 떠 있는 것같이 보인다.

구겐하임 미술관이 이렇게 방대한 양의 작품을 소장하게 된 데에는 수많은 기증자들의 도움이 컸다.

1976년 탄하우저 부부에게서 세잔, 고흐, 고갱, 드가, 마네, 피카소 등의 작품들을 기증받으면서 더욱 다양한 컬렉션을 갖추게 되었으며 그 외에도 끊임없는 매입과 기증에 의해 몬드리안, 블랑쿠지, 샤갈, 미로, 브라크, 리히텐슈타인 등의 20세기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품들을 상당수 보유하고 있으며 특히 칸딘스키의 작품은 세계에서 가장 많기로 유명하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스페인의 빌바오에 분관이 있으며,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에도 오픈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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