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메트로폴리탄에는 많은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 있다. 

주요 작품을 알아보기 전에,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1980년대 이전까지 화가들은 안료를 신선한 달걀 노른자와 섞어서 물감을 만들어 그림을 그렸다.

달걀 노른자는 튼튼한 도막을 만들어 안료를 고정한다.

이를 템페라 기법이라고 한다.

물감을 제작해서 그름을 그려야 했고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그림은 실내에서 그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림을 보존하기 위해 달걀과 린시드를 섞어 바니시로 사용해는데 반 얀 에이크는 바니시를 연구하다가 힌트를 얻어 안료와 신시드와 다른 재료를 섞어 만든 유화 물감을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다.

당시 유럽의 거의 모든 화가 유화로 그림을 그리게 됐다.

젊은 화가들은 기존의 아뜰리에를 벗어나 햇빛이 찬란한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모네, 마네, 시를레, 르누와르 같은 화가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야외에서 그리다 보면 사람과 물체가 빛에 반사되고 색체가 번지기도 했다. 

소개 될 화가들의 작품만 봐도 어떤 느낌인지 감이 올것이다.


사실 모네, 반고흐 등의 서양의 인상파 및 후기 인상파 작가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작가는 따로 있다. 

가츠시카 호쿠사이(Katsushika Hokusai 1760~1849) 일본 에도시대에 활약한 목판화가 이다. 

호쿠사이 그림은 당시에도 인기가 있어 있는대로 판화로 찍어내서 팔았지만, 정작 밑그림을 그리는 돈만 받았던 호쿠사이는 매우 가난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인상파 작품 / 인상파의 화가들

인상주의란 전통적인 회화 기법을 벗어나 자기의 느낌을 주관적으로 표현하려는 화파이다.

따라서 대상을 정밀하게 사실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느낌에 따라 생략하거나 단순화하여 주관적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작가들의 기법이 거의 비슷하여 주관적인 개성을 충분히 나타내지 못했다.

전기 인상파

인사파의 출발에 가장 큰 영향을 준사람은 마네이지만, 모네의 작품을 시작으로 인상파가 시작되어 지금은 인상파의 창시자로 불린다.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

<인상:해돋이>에서 인상파가 시작 되었다.

사실 처음의 인상주의에는 조롱의 뜻을 담고 있었다.

1874년 최초의 인상파전에서 선보인 이 그림을 본 루이 르로이라는 비평가가 모네의 그림을 보고 비아냥거리면서 붙여준 이름이 인상주의였는데, 인상파 화가들은 이 말을 자신들에 대한 정당한 명명으로 기꺼이 받아들였다.

르로이는 날로 먹는 장신 정신의 자유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악담을 늘어놨으며, 그림보다 걸려 있는 벽지가 훨씬 완성도가 높다보인다며 비아냥거렸다.

인상파에게 동일하게 쏟아진 비난은 못그린 그림을 그려놓고 작품이라고 우긴다는 것이였다.

그림이란 사진처럼 정교하고 우아한 주제를 다루어야 하는데, 고작 지저분한 항구 풍경 붓질 몇번으로 그려놓고 폼을 잡는다는게 비판의 요지였다.

대표작 : 인상:해돋이, 연꽃, 루앙의 성당 등

메트로 폴리탄 소장 : 해바라기가 있는 정물(Bouquet of Sunflowers, 1881), 겨울 안개(Ice floes, 1893), 루앙대성당 (Rowen Cathedral, 1894), 수련 (Claude Monet, 1920~1926), 네그루의 포플러 나무(The Four Trees, 1981)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1832~1883)

마네하고 모네가 늘 헷갈리실텐데요

마네는 모네보다 시대적으로 선배인데 한참 아래인 모네하고 비교되는걸 언짢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모네를 본격적으로 알면서부터 그와 교류하며 친교를 쌓았다고 하죠.

대표작 풀밭 위의 식사온실투우 등

메트로 폴리탄 소장 피아노 치는 마담 마네(Madame manet at the piano, 1868). 아르장퇴유 정원의 모네가족 (The manet family in the garden, 1874), 마담 모네와 그의 아들(Madame manet and her son, 1874)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ro. 1830~1903)
후기에 풍경이나 시골 풍경을 소재로, 조르주 쇠라의 신인상주의 이론을 받아들여 한때 점묘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피사로는 인상주의 화가들이 개최한 7번의 전시회에 모두 참가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는 친절하고 따뜻하고 지혜롭고 남을 잘 격려해주었기 때문에 당시 개성적인 표현의 새로운 방법을 개척하고자 분투하고 있던 젊은 미술가들(모네·르누아르·세잔·고갱) 사이에서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대표작 : 빨간 지붕들, 세잔의 초상, 우물가의 여인과 어린이 등

메트로 폴리탄 소장 : Jalais hill Pontoise 1867, Barges at pontoise 1876 등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